
살을 빼신 분이 제일 살이 잘 찐다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저는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좀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동안 제가 겪었던 수많은 다이어트 실패가 단순히 의지 부족 때문이 아니라 몸의 방어 기전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원푸드 다이어트, 저탄고지, 간헐적 단식까지 유행하는 방법은 다 해봤지만 결과는 늘 같았습니다. 3kg 감량 후 폭식, 그리고 요요. 이 패턴을 몇 년째 반복하면서 제가 깨달은 건 결국 꾸준함이었습니다.
살찌는 체질은 정말 있을까
체중의 45~70%가 유전적으로 결정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일란성쌍둥이가 이란성쌍둥이보다 체중이 비슷한 이유도 여기에 있죠. 부모님이 비만이면 자녀도, 심지어 그 집 반려견까지 비만인 경우를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장내 세균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알뜰살뜰하게 영양소를 분해해서 흡수시키는 세균을 가진 사람은 같은 양을 먹어도 더 많은 에너지를 축적하게 됩니다. 실제로 비만한 사람의 장내 세균을 무균 생쥐에게 이식했더니 그 생쥐도 쉽게 살이 쪘다는 실험 결과도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의 장내 세균을 비만인 사람에게 이식하는 치료법은 아직 널리 사용되지는 않지만, 특정 대장염 치료에 효과적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주변 환경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함께 식사하는 사람이 물을 마시면 나도 따라서 마시고, 음식을 먹으면 나도 먹게 되는 거울 신경 때문에 대식가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면 자연스럽게 많이 먹게 됩니다. 식습관의 영향 때문인지 비만한 사람들이 대부분 모여있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되었습니다.
저의 경우 회사에서 간식을 먹을 때나 회식 자리에서 항상 이 패턴을 경험했습니다. 누군가가 간식을 가지고 와서 나눠먹는다던지 아니면 식사를 마친 후 한 명이 달달한 후식을 시키면 분위기에 휩쓸려 저도 주문하게 되었습니다. 제 경험처럼 체중 증가는 환경적 요인에도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운동만으로는 살이 안 빠지는 이유
운동해서 살 빼겠다는 분들이 많은데, 러닝머신에서 30분 걸어도 겨우 100칼로리 정도밖에 소모되지 않습니다. 등산을 다녀와서 파전과 막걸리 한 잔 하면 소모한 칼로리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섭취하게 되는 거죠.
제가 여러 다이어트를 시도하면서 느낀 점은 일단 먹는 걸 줄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먹는 양을 줄이면 우리 몸은 절전 모드에 들어갑니다. 에너지 섭취가 줄어들었으니 최대한 에너지를 아끼려고 하는 거죠.
이 시기에 '물만 먹어도 살찌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옵니다. 실제로 체중을 많이 감량한 사람들의 기초 대사량을 측정해 보면 뚝 떨어진 상태가 몇 년간 유지된다고 합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다시 살이 찌고, 더 불행한 건 원래 체중보다 더 늘어나기까지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운동을 통해 골격근의 양을 늘리고 활성을 높여야 합니다. 근육량이 늘어나면 절전 모드에서 벗어날 수 있고, 에너지 소비가 정상화됩니다. 저는 최근 케틀벨 스윙을 시작했는데, 한 번에 10~15회씩 세 번 반복하는 정도만으로도 확실히 달라지는 걸 느꼈습니다. 매일 운동을 하며 인바디 측정을 통해 근육량을 확인했고 꾸준하게 한 달 간 운동을 했더니 조금씩 근육량이 늘고 체지방량이 감소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망가진 대사를 회복하기 위해 운동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운동을 통해서 따라오는 이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GLP-1 호르몬의 영향
최근 GLP-1이라는 장 호르몬을 이용한 비만 치료제가 화제입니다. 위고비나 마운자로 같은 약물인데, 15~20kg까지 감량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이 방법으로 살을 뺐다고 밝히면서 더 유명해졌습니다.
GLP-1은 우리 몸에서 자연적으로 분비되는 호르몬입니다. 음식이 소장을 지나갈 때 분비되어 췌장에 인슐린 생성을 촉진하고, 위장 운동을 늦추며, 뇌에 포만감 신호를 보냅니다. 문제는 이 호르몬이 혈중에서 2분 만에 분해된다는 점이었는데, 제약회사들이 오랫동안 연구해서 안정적인 형태로 만든 것이 현재의 비만 치료제입니다.
다만 약물 치료에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메스꺼움, 구토, 설사나 변비 같은 위장관 증상이 가장 흔하고, 심한 경우 췌장염까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가격도 만만치 않고 체중 감량 목적으로는 아직 보험 적용이 안 됩니다.
저는 고도비만은 아니지만 체질 개선을 위해 식사 순서를 바꿔봤습니다. 채소와 단백질을 먼저 먹고 탄수화물을 나중에 먹는 방식인데, 확실히 포만감이 빨리 오고 전체적으로 먹는 양이 줄어들었습니다.
결국 다이어트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막연히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자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고 모니터링해야 합니다. 체중계로 매일 체중을 재고, 스마트폰 앱으로 칼로리를 기록하고, 필요하다면 연속 혈당 측정기로 자신의 데이터를 객관화시키는 것도 방법입니다.
수면도 중요합니다. 7~8시간 정도 충분히 자는 것이 좋고, 잠들기 전에 음식을 먹으면 장이 쉬지 못해서 다음 날 몸이 개운하지 않습니다. 하루 리듬을 잘 타는 것만으로도 대사가 좋아집니다.
단기간에 굶거나 고강도 운동을 하는 방식은 살을 빠르게 뺄 수는 있지만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저도 그 과정이 너무 괴로워서 결국 참다가 터져서 폭식하고 다이어트에 실패했던 경험이 수없이 많습니다. 다이어트라는 개념보다 살이 안 찌는 체질로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둔다면, 천천히 시간을 두고 식습관을 고치고 무리가 되지 않는 저강도 운동으로 대사를 회복시키는 게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만은 이제 더 이상 게으르거나 많이 먹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닙니다. 유전, 생활습관,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 질병입니다. 필요하다면 약물의 도움을 받아 체중을 감량한 뒤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유지하는 것도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선택지라고 봅니다. 혈당, 혈압, 콜레스테롤 관리와 함께 꾸준한 운동만 있다면 망가진 몸도 다시 건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